𝙇𝘼𝙓 𝙒𝙄𝙆𝙄
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대약진 운동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숨겨진 원흉 == 대약진의 책임은 오랫동안 려우 즈카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일부 공개된 당 문서는 징발의 실무를 밀어붙인 인물로 총리 팜 반 롱(范文龍)을 지목한다. 팜 반 롱은 1954년 려우가 당 주석직에 전념하면서 총리에 오른 이래 12년 동안 행정부를 이끌었다. 그는 농촌에서 곡물을 거두어 도시를 먹이고 사비에트에 대금을 갚아야 할 책임을 진 인물이었다. 공개된 전보들에 따르면 그는 1959년과 1960년 내내 지방 간부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거나 전보를 보내 징발 목표를 독촉했고, 화운성과 남령성에서 대규모 아사가 보고된 뒤에도 할당량을 줄이지 않았다. 식민지기의 공출 장부를 되살려 쓰라는 식량부의 방안을 최종 승인한 것도 총리실이었다. 려우 즈카이가 보고된 풍작을 믿고 대약진이 인민을 잘살게 할 것이라 확신했다면, 팜 반 롱은 실제 수확량을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 무거운 책임이 있다는 것이 비판론의 요지다. 그는 1960년 말 한 내부 회의에서 "농촌이 굶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도시가 굶으면 혁명이 끝난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팜 반 롱은 책임을 피했다. 1962년 당대회에서 려우가 자아비판을 할 때 그는 침묵했고, 문화대혁명 때는 려우 편에 서서 총리직을 내놓는 대신 신변을 지켰다. 1978년 정돈 회의는 대약진을 '려우 노선의 과오'로 규정했는데, 이 결론은 모든 책임을 이미 세상을 떠난 려우에게 돌림으로써 팜 반 롱을 비롯한 당시 실무 책임자들을 사실상 면책했다. 그는 1984년 혁명 원로의 예우 속에 사망했다. 그의 역할이 공개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사망 이후, 그것도 해외에서 출간된 연구를 통해서였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